자월면의 유래
군민의 옹진, 뿌리를 찾아서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자월면의 유래
군민의 옹진, 뿌리를 찾아서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자월면은 조선시대 관가에 근무하던 어느 사람이 귀향살이를 하러 와서 첫날밤 억울함과 신세를 한탄하며 하늘을 쳐다보니, 마침 보름달이 유난히 밝은데 갑자기 달이 붉어지더니 바람이 일어나고 폭풍우가 몰아쳐 그는 하늘도 자기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자월(紫月)’이라고 불렀다하며 자월면(紫月面)은 서기1392년경 고려말 공민왕 후손이 이태조의 탄압을 피해 자월도에 정착한후 조선시대에는 남양군에 속하다가 1913년 경기도 부천군에 편입되어 1966년 7월 영흥면 자월출장소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7월 행정구역개편으로 옹진군에 소속되어 1983년 2월15일 행정구역개편으로 덕적면 승봉리와 영흥면 자월리, 이작리를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승봉리
안(큰)마을 : 승봉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주당죽에서 거주하였으나 질병이 돌고 병으로 인해 사람이 많이 죽어 이곳으로 이주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산다하여 안(큰)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이작리
계남리 : 이 부락은 이작1리 남쪽에 있는 부락으로 마을 형태가 게 모양으로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 옛날부터 게가 많아 이 지역 주민은 게로 끼니를 이어 나갔으며 게는 귀신을 쫓는다하여 집집마다 게를 잡아 처마 밑에 매달이 놓았다하여 ‘게남리’라 부르다가 변음 되어 '계남리‘로 불리고 있다 한다.
벌안 : 벌집 모양의 그물을 뗏목처럼 쳐 놓고 고기를 잡았다 하여 ‘벌안’이라 불리고 있다 한다.
자월리
자월도(紫月島)의 전부를 자월리라 부르며 조선시대 관가에 근무하던 사람이 귀양살이를 하러 와서 첫날밤 억울함과 신세를 한타하며 하늘을 쳐다보니 마침 보름달이라 유난히 밝은데 갑자기 달이 붉어지더니 바람이 일어나고 폭풍우가 몰아쳐 그는 하늘도 자기의 억울함을 알아주는가 싶어 그때 이곳의 이름을 자월도라 지었고 그는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갈 때 큰 바위에 자월도라고 새기고 떠났는데 그 후부터 이 마을은 자월리라 불리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