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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백령면의 유래

군민의 옹진, 뿌리를 찾아서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백령면 이미지

백령도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의하면 곡도(鵠島)라고 불렸으며 고구려에 속한 땅이었고, 고려태조가 백령(白翎)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고니를 뜻하는 '곡'자가 나타내듯이 이 섬은 온갖 철새들의 천국이었고 특히 이 새가 많았다. 바다에 배를 띄우고 멀리 나가서 보면 섬 전체가 모두 날개로 덮힌 듯 보일만큼 새들의 무리가 장관이었다고 한다.

백령도는 2,200여년 전 삼한 시대에는 대방군에 속해 있다가 2,000여년 전에는 진번군으로 한나라 남부 도위를 두고 소명현에 속한 듯 하다. 백제 전성기에는 고구려의 강역에 들었고, 고구려 전성기에는 한성에 딸려 있었다고 한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했을 당시에 고구려의 군사가 이곳에서 신라의 군사와 접전하여 물리친 일도 있었다. 신라통일 이후에는 한주(漢州) 장구진(長口鎭)에 딸려 있었다.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려 땅이 되고 고려 태조가 통일한 뒤에는 해주에 속하게 되었다.

백령도는 고려의 현종 때 진을 두어 통치하였다. 고려의 행정 조직이 오도(五道) 양계(兩界)일 때에는 서해도에 속해 있었고, 고려 말에는 오해도(五海島)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조선 세종때에는 해주목사(海州牧師)가 관할하였다. 근세 중기에는 황해우도(黃海右道)에 소속되어, 옹진에 설치된 병마 절도 사령에 귀속되었으며, 용진에서 백령도에 행수군첨절제사(行水軍僉節制使)를 파견하였다.

백령도는 근세 조선에 이르러 중요한 육로와 해로가 되었다. 조선말엽 전국이 23부로 구성될 때 후주부에 속해 있다가, 13도가 설치되고 나서 일제 말까지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으로 내려왔다. 해방후 38선이 남북을 가른 후, 백령도는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에 속해 있다가, 1995년도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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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 2017.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