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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영흥면의 유래

군민의 옹진, 뿌리를 찾아서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영흥면 이미지

영흥도

고려가 망하자 고려왕족의 후예인 왕씨가 본도에 피신 정착하여 살고있는 동안 본도에서 제일 높은 산인 국사봉에서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하여 영흥도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동

영흥도 선착장에서 4Km 떨어진 길이 1Km 폭 10m의 중앙천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깊숙이 들어 앉아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동(관청이 있는 마을) 이라 불리우다가 법정리로 되면서 내리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내1리, 내2리는 "내동"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가막개

38 이북에 있는 황해도 옹진군 봉구면 북포리에 있는 가막개에 살고있던 주민들이 6.25때 월남하여 이곳으로 집단거주하여 살면서 “가막개”라 부르고 있다.

고리장골

영흥도 진두 선착장에서 4km 떨어진 마을로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골짜기 에서 노인들이 옛날 풍습에 의한 고리장을 지냈다 하여 “고리장골” 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막꾸지

영흥도 진두선착장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이곳은 옛날에 꾸지나무가 많고 맨끝(외진곳)에 있다고 해서 “막꾸지” 라고 부르게 되었다.

방개골

영흥도 서쪽으로 1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에 재래종 밤나무가 잘자라 밤나무 숲이라해서 밤개골로 변음되어 “방개골” 불리고 있다.

버드니

영흥도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잘 자란다 해서 버드나무를 한그루 심은 것이 나천이라 불렀는데 하천에 버드나무가 1000주 가량 자라면서 버드나무골이라 부르다가 구한말 시대부터 버드니라고 불리우고 있다.

벌건너

영흥도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에 제방을 쌓기 전엔 바닷물이 마을 앞을 가로질러 있어 간조가 되어 물이 빠져 50m 가량 끝이 생겨 갯벌이 보여야만 건너 갈 수 있었던 곳이라 하여 뻘건너라 부르다가 변음되어 “벌건너”로 불리우고 있다.

붉은노리

영흥도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해안 산비탈이 유난히 길게 뻗쳐 있으며, 또한 붉은 흙과 노을 그리고 산의 경치가 조화를 이루어 절경을 형성했다하여 “붉은노리”로 부르고 있다.

삼박골

영흥도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동네의 모형이 절구 형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오른쪽 산의 모형은 바가지이고 가운데 있는 산은 곡식을 퍼내는 삼태기 모형 으로 이루어 졌다하여 “삼박골”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양지말

영흥도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의 남쪽을 제외 하 삼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항상 햇볕을 많이 받고 겨울에는 강한 바람을 막아주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하여 양지마을 이라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양지말로 부르게 되었다.

은골

영흥도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 보릿고개(음력 5월)가 있을 때 먹을 것은 물 밖에 없던 중 그 해마저 가뭄이 계속되어 냉수 한번 실컷 먹지 못할 정도로 가뭄이 심한 해 한 노인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본 옆집 개가 와서 입에 물을 담아 노인 입에 물을 축여 드렸다하여 그 노인은 사람도 아닌 개의 은혜도 못 갚고 죽는구나 해서 “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중박골

옛날 마을 뒷산 중턱에 절2채가 있었는데 스님 20여명이 불공을 드리고 공부 하던 곳이라 해서 “중박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탑골

영흥도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이 마을은 옛날 어느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묘앞에 걸맞지 않은 큰 탑이 있는 것을 보고 이 탑 때문에 마을이 번창할 것이라고 하여 “탑골”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터골

이 마을 앞으로는 바다며 뒤와 앞옆은 산으로서 그 형세가 마치 삼태기처럼 되어 있어 지관이 이 마을 가문이 번성하고 만사가 잘된다는 이야기에 의해 “터골”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외리

영흥도 중앙에 위치한 길이 1km 폭 10m의 중앙천 왼쪽 밖에 있는 부락이라서 외동으로 부르다가 법정리로 되면서 “외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소장골

영흥도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 “소정선비”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라 하여 공부하는 “선비의 마을”이라 하였으나 한학당이 없어지면서 “소장골”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용담리

영흥도 남쪽으로 4.5km 떨어진 외진 마을로서 옛날에 큰 연못이 있었고연못을 지키는 큰용이 살다 승천한 곳이다하여 “용담리”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티골

영흥도 선착장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마을로서 농토가 비옥하고 물줄이 좋아서 가뭄이 없고쌀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 하여 옛날에는 토옥골 이라고 부르다가 변음되어 “티골”이라 불리우고 있다.

선재리

선재도 일원을 전부 선재리라 부르고 있으며 섬의 주변에 갈매기나무, 해당화 나무가 많은 곳으로매우 아름답고 물이 맑아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춤을 추던 곳 이라하여 “선재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강구태

선재리 뱃터에서 서남쪽 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바닷물의 돌출 부분 사이가계곡 100m나 되는 큰골로 되어 있어서 어선 정박이 안전하고 고기가 육지 근방까지 올라와 대나무 촉으로 고기를 잡는 등 유일한 어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강구태”라고 부른다.

갑진말

선재리 서북쪽에 낭떠러지가 있는 부락인데 옛날에는 40~50m의 각이 진 곳이 있었으나 현재는 풍화로 인하여 옛 자취는 찾아 볼 수 없지만 각이진 마을 이라고 해서 각진말 이라고 부르다 변음되어 “갑진말”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논골

선재리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이곳은 논이 한평도 없었던 곳으로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는데 제방을 막음으로써 논이 생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하여 “논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드물이

영흥도 선착장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진 이곳은 논이 한평도 없었던 곳으로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는데 제방을 막음으로써 논이 생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하여 “드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뱃말

선재도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선촌 이라고도 불리우며 이 곳에서 종선을 운항하고 또한 어선이 정착하였다 하여 “뱃말”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문말

조선시대 한양에서 온 생원이 청소년을 위해 서당을 만들어 글을 가르쳤던 곳이라 해서 문촌 이라고 부르다가 1900년도 초에 “문말”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절골

선재리 뱃말에서 서남쪽 2.5km위치한 마을로서 조선왕조 중엽에 마을 노인 들이 조그마한 절(사찰)을 만들어 나라가 어수선하면 국사를 위한 마음으로 100일 불공을 드리는 등 불교를 전파했다 하여 “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큰오리

이곳에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는데 옛날에 사람이 살지 않을 때도 철새의 먹이가 많이 있어 황새, 왜가리, 오리 등 철새가 많이 서식하였던 곳이며, 특히 오리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큰오리”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측도

이 섬은 간조시에는 연육이되고 만조시에는 바다로 되는 곳으로서 섬 주변에 물이 맑아 고기가 노는 모습과 바다밑을 측량할 수 있다하여 "측도"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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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 2017.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