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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대청면의 유래

군민의 옹진, 뿌리를 찾아서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대청면 이미지

대청도

조선왕조 명종때 국모 윤씨의 신병으로 명(名)의원의 처방을 받았으나 백약이 무효하였다. 그러던 중 윤씨의 병세에 명약은 ‘상기향’이라 하여 전국팔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뽕나무에 맺혀진 상기향을 구하도록 명하였다. 전국에서 구하던 중 이곳 암도(岩島)까지 입도하여 이곳 내동에서 그 상기향을 구하여 상납하니 그로 인하여 국모 윤씨의 병이 완쾌되었음으로 그 후 조정에서 서해 암도를 그냥 방치할 수 없다하여 왕관자 1조 각띠 1조를 하사하였고 돌만 있는 암도(岩島)가 아니고 수목이 무성한 큰 섬이라 하여 대청도라 칭했다.

소청도

대청도의 유래와 같으며 산세가 경사지고 마을이 협소하여 작은 섬이라 하여 소청도라 하였는데 대청도와 소청도가 대청면으로 소속되어 오다가 1975년 5월 20일 대청면 소청출장소를 설치하여 예동, 노화동 2개 행정리를 두고 있다. 현재 소청도에 주요 성씨는 광주노씨(光州魯氏) 김해김씨(金海金氏) 全州李氏(전주이씨) 등이 많이 거주하고 있음.

서내동(대청1리)

옛날에 매가 많이 서식 하였다 하여 매막골로 불려졌으며 원(元) 순제의 구지(舊祉)가 있어 기와조각이 출토된다고 알려졌던 지역으로 조선시대 황해도 수사보고때 내동으로 불렸으며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서내동(西內洞)이라 불리고 있다 한다.

선진동(대청2리)

옛날 중국 상선이 이곳을 지나다 쉬어갈 곳을 찾던 중 이곳 항구가 정박하기 적합하여 내리고 먼 항해길에 여장을 풀곤 하였다 하여 배진포라 칭하여 오다가 이말의 한자음을 따서 선진동(船津洞)이라 불리고 있다.

옥죽동(대청3리)

옛부터 이곳의 토질이 비옥하여 개간할 만하고 이곳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었다 하여 한자음을 따서 옥죽동(玉竹洞)이라 칭하여 지금까지 불리어 내려오고 있다.

모래울동(대청4리)

옛날에 온 마을이 바닷가에서 날라온 모래로 뒤덮여서 마을 전체 풍경이 마치 모래밭같다 하여 모래월이라 칭하여 오다가 한자음을 따서 사탄동(沙灘洞)으로 불리고 있다. 이 지역이 옛날에는 잡초와 수목이 우거지고 경작지에 시간이 많이 걸린 탓에 농사일이 잘 안되어 개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주동(대청5리)

옛날부터 대청도에 주민들이 정착한 후 주로 가까운 중국으로부터 식량을 운송해와서 창고에 적치하여 그 식량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하여 창고마을이라 불려졌으며 이후 한자음을 따서 고주동(庫住洞)으로 부르고 있다.

동내동(대청6리)

옛날에 학이 많이 서식하였다 하여 학골이라 불렀으며 지금의 서내동인 매막골과 협쳐져서 내동으로 통합된 후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동내동(東內洞)으로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양지동(대청7리)

삼면이 삼각산이라 불리는 산으로 둘러싸여 안골이라고 불려졌던 지역이었으나 이 지역이 내동으로 통합되면서 양지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양지동이라 칭하였다 한다.

예동(소청1리)

소청도에서 섬이 작아서 옛부터 소수의 주민이 이곳에 거주하여 와서 서로 외로움을 달래며 돕고 살아왔는데 너무도 외로웠던 그들에게는 지나던 상선이나 표류해 온 선박이 정박하게 되면 깍듯이 귀한 손님으로 접대하며 친절을 베풀어 예의를 지켰다 하여 이곳을 예동(禮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노화동(소청2리)

이 지역은 예로부터 지역이 가파른데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으로 이루어졌던 지형인데다 또한 옛부터 갈대가 무성하였다 하여 이 마을을 노화동(盧花洞)이라 불려지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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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 2017.08.24